작성일
2020.11.30
작성자
김연아
조회수
9440

[KOICA 프로젝트봉사단 활동수기] - 같이의 가치

[KOICA 프로젝트봉사단 활동수기]

-같이의 가치, 도미니카공화국과 함께한 1년-


기 수

프로젝트봉사단 4

분 야

보건일반

이 름

안 다 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파견되기 전, 교육에서 간간히 듣던 내용으로만 도미니카공화국을 상상했었고, 도미니카공화국에 대한 자료도 인터넷엔 잘 나와 있지 않아 약간은 불안한 마음과 기대감을 앉은 채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출국했었던 모습이 생각난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첫인상은 ‘친절함’이었다. 뉴욕에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가는 비행기 옆자리 할머니와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할 때부터 도미니카공화국 사람들의 인상은 친절하다였고, 홈스테이 첫 날 가족들이 우리를 위해 집 앞까지 마중 나와 주었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미니카공화국 사람들은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마음으로 가까워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보고 느끼는 게 전부는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걱정도 되었지만, 결국 내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활동을 포함한 전체적인 생활이 그들의 도움과 호의 없이는 잘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도미니카공화국에 ‘네이바’라는 지역에서 활동했었다. 네이바에 처음 파견되었을 당시 활동에 대해 정해진 것은 프로모터뿐으로, 어디서 활동을 해야 하는지와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와 프로모터는 맨땅의 헤딩 느낌으로 학교, CCPP, CTC 등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활동이 가능한 기관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몇 번의 방문으로 기관의 신뢰와 허락을 받는 것은 어려웠고, 프로모터가 봉사활동을 하던 기관을 찾아가 어렵게 기관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 기관은 프로모터가 봉사하던 네이바의 외곽에 위치한 에스테로라는 지역의 CTC였다. 이곳은 컴퓨터실이 있고,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방과 후에 학생들도 많이 방문하기 때문에 학생 모집에 있어서도 유리해보였다. 곧바로 두 번째 기관에서도 허락을 받을 수 있었는데, 두 번째 기관은 외곽에 위치한 초등학교였다. 이 학교는 우리와 우리의 활동에 대해 소개할 때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었고, 한 학급에서의 정기적으로 수업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준다고 했다.
활동할 기관을 찾는 일은 도미니카공화국 전체 활동기간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외부인, 특히 외국인이 기관에 갑자기 찾아와 활동을 한다고 하면 누가 받아줄까 하는 걱정으로 프로모터와 함께 PPT와 자기소개를 스페인어로 준비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시기에 가장 프로모터에게 의지할 수 있었고, 혼자 활동하는 것이 아닌 같이 활동하는 것에 감사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①
[한국문화 수업]
우리가 준비한 첫 번째 수업은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수업이었다. 이 수업을 준비한 이유는 한국을 모르는 학생들이 너무 많고, 한국에 대해 알려주어 외국인인 나에 대한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소개 자료는 한국의 위치 및 기본소개, 한식, K-Pop, 태권도 등으로 준비했고, 태권도를 배웠었던 프로모터가 태권도 시범도 보여주기로 했다.
첫 수업인 만큼 도미니카공화국과 한국의 수업 환경이 많이 다를 수도 있다는 각오를 충분히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부분에서 당황스러웠다. 수업 분위기가 개방적이라 학생들이 수업 중에도 자유롭게 나갔다 들어왔다 했고, 환경적인 부분도 많이 부실했다. 책상이 모자라 한 책상과 의자에 두 명의 학생이 앉아야 했고, 전기도 중간에 수시로 끊기는 상황이었다. 또한, 학생들이 외국인인 나를 어려워해 대답이나 반응을 잘 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첫 수업을 마칠 수 있었지만, 수업이 끝나고 내가 준비한 모든 것들을 다 하지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속상했고, 허탈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프로모터와 기관 분들이 옆에서 너무 잘했다고 계속 말해주어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수업을 발판으로 다음 수업은 이곳의 수업 분위기, 환경, 그리고 수업 중 일어날 수 있는 문제 상황들을 고려하여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국문화 수업 사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②
[가족과 함께 쓰레기통 만들기]
여러 가지 활동을 하던 도중, 정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와 기관에 꾸준히 나오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기획해보고 싶었고, 프로모터와의 회의 후에 가정방문을 통해 가족 간의 유대관계에 대한 교육을 하기로 했다. 가족 유대관계 교육과 함께 가족과 같이 할 수 있는 액티비티 활동으로 쓰레기통 만들기 활동도 겸하기로 했다.
활동은 우선 가족을 섭외한 후에 프로모터가 가족 유대관계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나와 프로모터가 함께 이후 가족이 다 같이 쓰레기통을 만드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번 활동이었다는 것은 나와 프로모터 모두에게 큰 도전이었는데, 가정을 섭외하는 것부터 가족 구성 전체를 대상으로 한 활동을 준비하는 것까지 다른 활동에 비해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더 많았다. 어렵게 집을 섭외하면, 약속된 활동 시간에 집에 찾아가니 집에 아무도 없거나, 바빠서 다음에 와달라고 해 다시 방문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하지만, 활동 후에는 힘든 만큼 보람이 배가 되었다. 우리가 찾아갔던 집이 10대에 임신을 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성의 집이라 그 친구와 우리 활동에 대한 이야기, 도미니카공화국의 10대 임신의 대한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이런 활동이 있다면 또 참여하고 싶다며 고맙다고 해주었다. 이런 말들이 나에게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첫 번째 가족의 쓰레기통]

[E-Volunteering의 시작]
코로나로 인해 원래 계획되었던 1년이라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귀국을 하게 되었다. 8개월의 시간을 도미니카공화국에 있었지만, 2개월의 현지적응교육을 제외하면 실제 활동한 기간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아쉬웠던 상황이었다. 그때, 원격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마음 한 편에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활동과 비대면인 원격봉사는 많은 것들이 달랐다. 어떻게 기획해야 비대면으로도 학생들에게 교육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팀원들과 계속해서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가 선정한 주제는 자기개발, 진로, 성인지의 3개로, 이 주제에 맞는 수업 자료를 개발해 현지에 있는 프로모터에게 전달하고, 자료를 전달받은 프로모터가 현지에서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기획하였다.
그 중에서 내가 맡은 주제는 자기개발이었다. 자기개발 자료의 목적은 부분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생각할 시간을 주고, 그 부분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이에 맞춰 자료를 개발했고, 최대한 프로모터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원격봉사의 활동 초반에는 나와 프로모터 모두 처음 이뤄지는 원격 봉사라 그런지 서로 의견 조율이 어려웠다. 프로모터와 나의 업무 분담도 잘 이뤄지지 못했고, 그에 따라 의사소통에도 문제를 겪었다. 시차로 인해 계속해서 소통을 할 수 없어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회기가 거듭될수록 활동에 익숙해졌고, 자연스럽게 서로 자신이 맡은 업무를 수행하게 되고, 갈등도 없어지게 되어 효율적으로 학생 그룹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내 프로모터는 학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학생들 관리에 있어서 뛰어났고, 학생들 역시 프로모터를 잘 따라 과제나 퀴즈를 잘 제출하였고, 출석률도 상당히 높았다. 첫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사전, 사후 설문지부터 성찰일지와 과제까지 100%의 제출률을 보인 적도 있었다.

[원격봉사 수업 사진]

이번 활동과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대면활동과 가장 크게 다름 점은 SNS 운영이라 할 수 있었다. Whats APP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활동을 콘텐츠로 만들어 올리고, 우리의 수업 자료도 업로드를 하였다. 대면 활동에서 특정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는 다르게 불특정 다수에게 우리의 활동을 소개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SNS의 큰 장점이었다.
SNS는 팀 안에서 소통팀, 기획팀, 디자인팀으로 업무를 분담하여 운영했고, 나는 기획팀에서 콘텐츠 기획과 디자인을 제외한 콘텐트 제작을 맡았다. SNS에 대한 운영을 이번 원격봉사를 통해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만큼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콘텐츠에 대한 회의부터 운영 방식, 이벤트들의 기획을 계속해서 팀원들과 회의해야 했다. 수업 활동과 다르게 원격봉사단 모두가 함께 운영하는 것이라 우리들 사이의 협력이 아주 중요했다. 6명의 단원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고, 이를 조율하는 과정이 사실 쉽지는 않았지만, 6명이기에 창의적인 다양한 의견이 모아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결과물 역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활동과 원격봉사를 포함하면 총 1년을 활동했는데, 이 1년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도미니카공화국에 환경은 처음엔 받아들이기 어렵고, 힘들기도 했지만, 결국 주변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쳐주었다. 학생들과 함께했던 많은 활동들은 준비과정은 어려웠지만, 학생들의 변화와 반응은 나에게 다시 힘이 되어주었다. 또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활동을 마무리해야 했던 나에게 원격봉사도 감사한 기회였다. 팀원들과 같이 만들어 가면서 더 멋지고, 완성도 있는 활동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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